생각 모음

느림에 대하여(김숨)

비우 2015. 11. 14. 00:26

느림에 대하여 /김숨 작가

‘나’는 항상 오빠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오빠의 방에 집착하였고, 천장의 구멍을 동경하였으며, 오빠에게서 나는 풀냄새를 느꼈다. 현실과 대비되는 모자(母子)에게서, 작가가 투영된 ‘나’는 대체 무엇을 추구했을까?

어머니의 절룩거림은 사고로 생겨난 가족의 아픔이다. 그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아들이 그것을 가장 먼저 따라했고, 아버지는 점점 그것을 못마땅해 한다. 그녀에게 반한 포인트가 그 느림인데도. 가장인 아버지는 세상이 요구하는 빠름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중된 맏아들이라는 직책, 이런 부분에서 ‘나’의 오빠는 벗어나려 했다. 그래서 조그만 타협점인 구멍을 천장에 만들었다. 그에게 구멍은 자신의 눈동자였고, 동시에 어머니의 눈동자였다. 그는 구멍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보며 억눌린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놓으려 한다. 어머니의 눈이 받아들이는 세상은 느렸을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주변을 자신의 주관으로 느리게 보는 거다. 오빠는 어머니의 느림을 배웠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못마땅하게 본 아버지가 구멍을 막으면서 가출이라는 이탈을 하게 된다. 현실에 순응해버린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서 찾지 않는다. 백일장에 나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구속시키기란 어려웠다.

오빠가 가출한 후부터 어머니는 느림을 포기해버렸다. 익숙한 느긋함을 버리고, 아들을 찾기에 시간을 허비했다. 그 덕분에 사고로 죽게 된다.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도태되어 있었다.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다가 도리어 화를 자초했다. 이 부분에서 더욱 ‘나’의 가정에서 희망이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녀의 죽음으로 변화되었고, 아들도 다시 돌아오게 된다. 눈동자 구멍도 다시 열린다. 마치 ‘겨울나무’에 잎이 돋을 봄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활기를 되찾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겨울나무’라는 시를 두고 나와 오빠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면 다시 봄이 찾아오듯, 장마에 쓸려간 어머니의 불행과 더불어 다시 나타날 행복을 암시하는 구절.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에 휩싸이지 않고도 행복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오빠의 말에서 이것을 배웠다.

내겐 봄을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희망으로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