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최인훈)
광장(최인훈)
주제: 꿈을 좌절시킨 광장
최인훈의 광장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는 이념이 대립된 광장이다. 말로만 대립이지, 남한과 북한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광장에선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거다. 둘 다 모순이 있었다. 남한의 광장은 텅 비어서 죽어버렸고, 북한의 광장은 혁명의 흥분만을 꾸미는 위선자다. 광장은 고독했고, 탈출구도 없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에게 남쪽은 월북한 아버지의 죄를 그에게 씌어주었고, 북쪽은 겉치레 혁명으로 그를 좌절시켰다. 그는 남한의 윤애에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거절당하고, 북한의 은혜에겐 사랑을 배신당한다. 슬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월북을 하고, 중립국으로 도피를 하고, 푸른 광장에 도달하게 된다. 이명준의 삶은 사랑을 준 은혜의 환영을 보며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명준은 다른 지식인과 조금 달랐다. 이념을 운운하며 갈등하는 모습 대신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인에게 상처받고 와도 윤애가 자신을 받아주기만을 기대한다. 약속을 깨뜨린 은혜에게서도 이상할 만큼 그녀의 사랑을 원했다. 이런 일들로 보아, 그의 이념이 대립된 광장에서 살아갈 조건은 아마 사랑이었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한민족끼리 물고 뜯는 광장에 뛰어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말로만 배척하는 관념 형태지, 두 광장의 모두가 개인주의로 살아간다. 그 개인주의에 일찍이 주인공은 신물을 느끼고 사랑에만 일생을 전념한다. 작가는 이명준을 통해 줄곧 사랑을 강조해왔다. 가령, 윤애에게 내쳐지자 바로 월북을 해버린다던가, 은혜에게 용서한다는 말 대신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구절 등을 통해, 광장에서 외로웠던 주인공의 내면을 계속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심리를 보면서 독자가 그를 사랑해주길 바랬던 거 같다.
자유의 밀실도, 나눔의 광장도 허례허식으로 그들의 진짜 속내를 감춘다. 그 덕분에 이명준은 어디에서도 자신이 바라는 유토피아를 찾지 못한다. 예전부터 많은 지식인들이 바라마지않던 평화의 광장은 경쟁의 물결 속에 점점 사라져간다. 누구나 꿈이 좌절될 때마다 버팀목을 찾기 마련이다. 언젠간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만으로도 버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명준은 타인에게 받는 사랑으로 삶을 연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앞세워 현실에서 자꾸만 도피를 했다. 뜨거운 청춘의 혈기에 몸담고 싶었으면서 전혀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길 바라면서, 세상이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어린애 투정이나 부리고 있었다. 벼랑으로 몰린 그는 더 이상 광장이 자신의 뜻대로 변해주지 않을 것을 예감하고 자살해버린다. 굳센 사람이라면 자신을 받아줄 광장을 찾기보다 내 것을 만들어 낼 텐데. 그는 그럴 용기조차 없어졌나보다. 은혜가 죽은 다음엔 아예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립국만을 외치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전혀 새 출발의 계획도, 마음도 없었던 거다. 패배와 실망감에 빠져버리면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거다. 그들은 다시 내쳐질까봐,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자신을 버리곤 남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을 비하했다. 세상에서 온정(溫情)이 사라질 때마다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현대에 와서 많이 늘어간다. 이명준도 개인 이기주의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받아줄 반석도, 쉼터도 없어진 마당에 어떻게 살고픈 마음이 들겠는가.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세상에서 그를 밀어버린 사회는 매정했다. 그때로부터 약 30년이 흐른 지금도 이런 분위기로 고조되어간다. 짧은 시간 내에 발전한 것은 많았지만, 인정을 잃어버린 사회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계속해서 광장의 모순이 가속하면 우리들의 삶이 더 삭막해지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여기서 피해가 늘어나지 않도록 고정된 관념들을 끊어야 한다. 푸른 광장에 빠지는 사람이 이젠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