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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염상섭)
제목: 고질적 여성 차별
만세전은 주인공 이인화가 유학 도중 친정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인화는 급히 떠나야 할 상황임에도 우유부단하게 이곳저곳을 헤맨다. 다시 마음을 잡고 고향에 가던 도중, 배 안에서 조선인들을 멸시하는 말을 듣고 조국민의 고충을 알게 된다. 그가 국숫집에서 만난 아이는 아버지의 조국인 일본을 더 동경했고, 이인화의 형은 집 근처 일대가 일본인 명의가 되어가는 것을 반기며 이익이 더 오르길 기대한다. 그는 그런 조국민의 태도를 보고 진절머리를 느끼고 부인과 가족, 조국의 더럽혀진 현실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인화가 느낀 한국은 구더기가 들끓는 묘지로 묘사된다. 죽어버린 사람들의 관념들이 묻힌 곳. 그런 곳에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반성에서 벗어나 제 가야할 길을 걸어간다. 정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책임과 의무를 지고 나아가길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소설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멸시적인 태도에도, 조선인들은 그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별 속에서도 저항적이지 않았다. 간혹 조국이 일본에게 잠식되는 판에도 기뻐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비추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일본을 칭송하기까지 한다. 자신들의 고향이 남의 나라에게 삼켜지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먹고 살기에 바쁜지, 나라가 어려운 판국에도 어떻게 돌아가든 알 바 아니라는 듯 살아간다. 이에 지식인들은 ‘작은 비판’을 해보지만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지식인들도 침체되는 분위기 속에 물들어 버린다. 작가는 주인공을 내세워 이러한 분위기를 이겨내고자 했다. 그가 묘지화(化)가 되는 한반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거센 반박을 하며 무뎌진 고전적 관념에 반기를 들게 했다. 지식인을 다시 일으켜 묘지에서 서성이는 민간인들을 이끌게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저항이 피길 바라는 마음이 ‘만세전’에서 보였다.
그렇지만 ‘만세전’에서도 고질적인 여성 차별이 나타난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중 국숫집 여자아이들과 건넛방형수, 이인화의 아내에게서 그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시대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해도 술집에서 여자아이들만을 고용하는 모습들은 전형적인 차별을 띄고 있다. ‘여자아이들의 분칠된 얼굴’이라는 표현은 아무리 봐도 남자 손님들을 상대로 대접하는 것 같은데, 성에 대한 의식이 너무 얕은 건지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다. 또 다른 인물인 건넛방형수는 최참봉 댁 둘째 딸로, 최참봉 댁이 파산하자 형님이 데려온 첩이다. 근대화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해도, 첩과 함께 세 식구서 산다는 건 명백한 여성 차별로 보인다. 첫째 부인에게선 아이를 볼 수 없다고 둘째 부인을 들이는데서 결혼의 의미를 조롱하는 고전적 관습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부인이 당하는 차별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기까지 한다. 아무리 집안의 큰 어른이신 아버지께서 남녀유별사상을 가지셨다 해도, 죽는 건 제 팔자라며 방치하는 건 차별을 떠나 인정(人情)까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 귀하신 ‘아들’들이 이 병에 걸렸다면 이런 식으로 행동했을까? 오랫동안 고집해오던 전통을 깨뜨리면서 당장이라도 양의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내는 집안의 남자들에게 그리 중한 존재가 아니었는지 앓다가 죽어버린다. 어머니를 제외한 집안사람들 모두가 손을 놓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어느 시대든지 사람의 목숨은 똑같이 귀중한데도, 성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
이렇게까지 여성의 존엄성이 낮아지면 안 된다. 어느 시대든 마찬가지다. 시대적 여성 차별은 반드시 고쳐져야 할 악습이다. 지금은 전보다 나아진 양성평등 시대지만, 아직까지도 철폐되지 않은 관념들이 남아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만세전’엔 여전히 여성들에겐 혹독했던 시대상이 반영되어있었다. 이러한 관념과 생활상이 더 이상 작품에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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