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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형제 ‘예프넨 진네만’이 네게 원한 건 단지 ‘살아남으라’는 것뿐이었지. 그리하여 너는 사 년 동안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뜻이 아닌 형제의 주문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모든 시험을 피해 살아남고,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다면 결국 그건 불멸이 아닌가? 너는 너 자신이 불멸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불멸자인 양, 너의 소원들을 미루고 억누르지 않았느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보리스는 항변했다.
“제가 무슨 소원을 억눌렀단 말입니까?”
“하나하나 돌이켜 보아라. 왜 복수하지 못했는가? 형제의 유언 때문이 아닌가? 왜 삼촌을 징벌하여, 또는 용서하여 자신의 과거를 깨끗이 씻지 못하는가? 망설임이 네 욕망을 옥죄고 있다. 왜 사랑하는 소녀를 너의 것으로 하지 못했는가? 필멸자일수록 짧은 생애를 더욱 양보 없이 살아야 하는 법인데, 너는 그녀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해 포기해버렸다. 너희 인간은 소원의 존재, 욕망의 존재, 그렇기에 한시라도 살아있을 그 내일을 위해 살아간다.”
보리스는 깜짝 놀라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오래 전, 벨노어 성에서 월넛 선생이었던 나우플리온이 그에게 했던 말 아닌가?
처음 보았을 때 그렇게 두려워 보였던 노인의 얼굴은 이제 신비로운 인자함마저 띠고 있었다. 마치 손자에게 충고하는 할아버지의 얼굴 같았다.
“그런 식으로 하여 끝내 원하는 것을 모두 잃고 나면 그때도 내 앞에서 네가 ‘소원의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소원을 잃을 수 없기에, 그리고 불멸하지 않기에, 마음을 돌궤처럼 닫고 살 수는 없다. 열어버려라! 네 형제가 닫아버린 그 마음을 열고 네 소원을 찾아내어 이루어내라! 살아남기 위해 닫았던 욕망을 다시 꺼내놓으란 말이다!”
“…….”
뺨을 타고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목도 막히지 않고 코도 시큰해지지 않았는데, 단지 눈물만이 흘렀다.
어깨에 놓여있던 무거운 짐을 지금까지 몰랐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번쩍 들어주는 순간 그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겨웠던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짐인 줄조차 모르고 한 발짝 떼어놓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이 그에게 가져다주었던 중압감, 이제 제안 받은 영원한 생명…. 다른 듯 했으나 본질은 같았던 그것을 이제 내려놓아도 될 듯했다.
살아남는 것보다 더 큰 것.
오래 전 그를 껴안으며 외친 나우플리온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쓰디썼으나, 이제는 맑았다. 아니, 이번에는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우플리온의 말대로 삶의 가치는 그것이 길거나 짧은 것에 있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로즈니스와 함께 대륙의 용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나우플리온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틀렸어! 넌 네 삶을 일부러 빈약하게 만들고 있어. 네게 부족한 건 바로 의지야! 죽은 사람의 삶은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면서 어째서 네 삶의 가치를 자꾸 그들의 죽음에 두는 거냐? 정말로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모조리 끝장내어 버리고 넌 너대로 네 욕망을 쫓으며 새롭게 살아라,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힘껏,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네가 불멸자가 될 수 없는 한, 너는 네 삶의 밀도를 높여서 그들이 잃어버린 삶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네가 그러고 싶다면!”
<룬의 아이들, 윈터러 7권 中>
‘룬의 아이들, 윈터러’의 전민희 작가도 첫 작품 ‘세월의 돌’을 나우누리 통신망에서 연재했다. 특유의 미려한 문체로 조금 느릿느릿한 전개 방식의 단점을 메울 정도로 그녀의 소설은 아름답다고 평가 받는다. 전민희의 소설은 판타지에서 중요한 세계관보다 인물에 중심을 두고 있다. 캐릭터의 완성이 곧 소설의 완성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인물 설정이 정교하기로 유명하다. 그것이 수려하고 묘사가 뛰어난 문장과 시너지를 일으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윗글에 나타나는 것처럼 다른 소설과 다르게 묘사 형식의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이영도 소설처럼 인물의 입을 빌려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위의 대목을 고른 이유는 이 대화가 ‘윈터러’의 주제부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인공 ‘보리스 진네만’이라는 인물의 유년시절 성장이 끝나는 지점이다. 보리스는 어릴 때 소중한 형과 가족을 잃지만, 형의 ‘살아남으라’는 유언으로 소원 없는 목숨을 연명한다. 하지만 그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소원을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살아오다가 마지막에서야 ‘윈터러’를 만든 겨울 대장장이(작 중 신(神))를 통해 그것을 깨닫게 된다.
어린 보리스가 점차 성장하는 이야기가 정점에 도달했을 때, 응어리진 그의 마음이 형에게서 벗어나게 된다. 얽매여있던 그의 삶에서 형의 존재는 보호자였는데, 그 보호자가 떠나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게 된 보리스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게 된다. 결국 그것이 소원 없는 자아를 만들어 타인들 앞에 벽을 놓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하지만 ‘윈터러’와 형의 약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과 조우하고,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결국엔 전부 얻게 될 것들을 나중에서야 비로소 받게 된다는 전개로 이루어져있었던 거다. 타 소설들과 다르게, 보리스라는 인물의 특성상 다른 인물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커서, 점점 이야기의 방향이 외곬적인 내용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부분이 독자들이 막막해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보리스의 전부여서 마지막엔 공감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 때문에 생겨나는 자아 형성 방식이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데, 윗글처럼 더는 과거에 남으려 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필멸자의 면모’를 되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내가 이 소설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는 주인공에게 몰입하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윈터러’를 처음 접했을 당시의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정독을 거듭하다보니 소설을 이해하는 방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청소년에겐 미래로 나아가는 성장 과정을, 성인에겐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어렸을 땐 ‘윈터러’에게서 희망을 얻었고, 지금은 내 사춘기를 영상처럼 나열하는 작업을 한다. 보리스가 성장할 때 독자도 성장할 수 있었고, 보리스가 넘어지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도 같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윈터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지금도 이 소설을 사랑한다. ‘윈터러’를 읽고 있었던 과거의 자신들이 남긴 잔상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내가 성장했음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스에게 겨울 대장장이가 해준 말들이 독자들을 변화시킨다. 나도 이 책을 읽음으로 누군가에게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마지막에 보리스가 복수를 포기하고 용서했던 것처럼 자신을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성장을 위해서 나와 ‘윈터러’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 소설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도 그 중학생 때 겪었던 나락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을 크게 바꾼 책과 인물로 ‘윈터러’와 보리스를 뽑고 싶을 정도다. 내가 보리스와 만난다면 다시 형과 조우해 나눈 대화가 감동적이었다고, 네가 나를 변화시켰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