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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섭이 가라사대 /손흥규 작가

역시 농촌 소설엔 소가 빠질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와 연관된 소설들이 정말 많았지만, 그럼에도 읽은 후에 받는 느낌은 제각각이었다. 기본적인 ‘소’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고, 부지런하면서 온순한 시골 냄새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소는 이런 부분들로 그려지지만, 아버지인 응삼과 아들인 봉섭이 대표하는 소의 이미지는 반대였던 것 같다.

그 차이점은 아마도 어릴 적 접한 소의 감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나뉘는 것일 테다. 어렸을 적 응삼은 자신의 소를 끔찍이 아꼈고, 그 때문에 그 소를 잃게 되었다. 자신과 한 몸처럼 여긴 탓에 자부심으로 길렀던 소를 싸움터로 내몰았다가, 그때 생긴 상처로 죽어가는 소에게 가족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반면에 봉섭은 소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 봉섭이 태어나기 전 까지 응삼은 자식을 둘이나 잃었다. 그 불행을 이웃사람들은 ‘응삼이 키우던 소가 그들의 자식의 생명을 먹고 자란다’고 소문을 낸다. 세 번째 아이를 갖고 있던 응삼의 부인은 소문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자신의 송아지를 죽인다(구체적으로 표현되어있진 않지만 정황상 그리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그 흉흉한 소문을 봉섭이 듣고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지 소가 내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부분에서 그와 소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추측한다. 또한 아버지를 소로 착각하는 부분들이 많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이유 덕분에 응삼의 소를 자주 훔쳐 팔고, 소들을 마구잡이로 대하는 언행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소 말고도 주목했던 부분은 역시 세대 차이. 젊은이의 시각과 그에 앞선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나타나는 사건에서 차이를 느꼈다. 오로지 돈을 추구하며 소를 물건 취급하는 봉섭이는 젊은 세대의 대표였고, 그가 소 장터와 싸움터에서 마주하는 모든 농촌의 것들은 기성세대를 엿보게 했다(이것을 더 나아가 도시와 농촌의 문제점으로도 이끌어갈 수 있겠지만, 그 정도까진 이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응삼도 그 차이를 더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런데 매번 그 차이의 결말은 봉섭이 아버지를 보며 소로 착각하는 것으로 끝난다. 처음 부분의 외모 묘사에서 응삼의 순박함을 표현했는데, 이것이 ‘소’라고 볼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응삼을 소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소’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응삼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나타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순수함의 상징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보았는데, 이것이 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농촌의 상징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소와 점점 동화되어가는 응삼을 봉섭이 제대로 보았을 때, 그 의미가 나타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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