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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모음

벽(정용준)

비우 2014. 7. 9. 22:15

벽 /정용준 작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이 떠올랐다. 한 때 이슈가 되어 사회에 숨겨진 일면에 안타까움을 모두 느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나, 하고 생각했다. 적은 일당에 휴식 없는 중노동에 인권이 무시되었던 ‘염전 노예 사건’은 사회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인신매매의 인식을 널리 알렸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 사건과 조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같은 사건인데도 여운이 다른 방향으로 갈렸다는 것이 신기했다.

‘벽’에 상징성을 부여한 방법으로 겉으로만 동정을 했던 사람들의 인식을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 직접 염전의 노예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뒷이야기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깨닫게 했다. 대장인 5와 5가 신경 쓰고 있었던 9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타자와의 벽, 새로 대장이 되는 21과 점점 대장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바라보게 되는 사회의 벽 등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점이 참 많았다. 이 중에서 작가가 가장 부각하고 싶었던 벽은 무엇이었을까?

노예들을 감시하는 감시자의 압력보다 더 눈에 띄는 그들의 사회의 압박은 감시자들이 정해준 대장과 그 밑의 관리대상과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노예를 늘려가고, 몇 없던 대장을 더 늘려가고, 낙오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모두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감시자들의 명령에 간접적인 방향으로 굴복한 대장 역할들은 그들의 사회(섬이라는 울타리의 사회)에서 조금 나은 입장에 놓였을 뿐, 직급이 올랐다고 해도 억눌린 양심이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마음을 좀먹었다. 지금에서 보다 나아지기 위해 약한 사람을 짓밟고 올라갔기에, 자신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윤리적 생각에서 벗어난 행동에 후회를 하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간다.

이 작품은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에게서 자신들의 벽을 발견함으로 절망을 알아가는 과정을 과도할 만큼 비극적이게 그려냈다.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벽’이란 조금 형태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있는 압박감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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