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바그다드 카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정작 찍은 곳은 미국이며, 중심인물은 독일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에 흥미가 가서 보게 되었다. 그 첫인상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소한 장소에서 서로가 정 반대인 사람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속엔 일상에선 그리 쉽게 접할 수 없는 따스한 여유가 있었다. 아마 그 여유로움이 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일 마음에 드는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브렌다. 변화가 가장 많았기에 다양한 면모를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그녀의 아들이 피아노를 치는데 있어서의 태도 변화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엔 마냥 시끄럽게만 생각하던 피아..
기대하고, 실망한다는 건 돌이켜보면 나는 많은 이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대했었다.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에게 밀려난 세월을 부모님께 사랑이란 형태로 보상받길 원했고, 동생들에겐 언니 대우를 기대했다. 다른 이들이 칭찬해주길, 관심 가져주길, 사랑해주길 기대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도 내게 기대했던 것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내가 순종하길 원했고, 동생들은 먼저 대우 받는 걸 기대했다. 다른 이들도 내가 그들을 이해해주길, 신경 써주길, 역으론 더 이상 자신들을 내 기대에 얽매여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 했다. 이제 네게 기대하는 것도 지친다. 살다보면 간혹 듣게 되는 말이다. 우리는 매번 기대를 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보다 수많은 기대들이 세상의 하루를 가득 메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치가 ..
드래곤 로드가 이 말을 알까? 「나는 단수가 아니다」 드래곤 로드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나는 질겁했다. 그렇군. 그는 알고 있었군. 드래곤 로드는 차갑게 말했다. 「그 간악한 녀석의 말이로군」 드래곤 로드의 목소리의 울림은 스산했다. 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에요. 당신이 아까부터 우리 일행에게 던져온 질문, 아마 당신은 우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셔서 그렇겠지요. 무례하다고 꾸짖지 않으시겠다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나가 아니에요. 따라서 당신은 아까부터 얼빠진, 죄송하지만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돼요. 예. 얼빠진 질문을 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가슴이 쾅쾅커리는걸? 다행히도 드래곤 로드는 초장이의 맛이 어떨지 심사 숙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차분히 말했다. 「나의 실수를 ..
“너의 형제 ‘예프넨 진네만’이 네게 원한 건 단지 ‘살아남으라’는 것뿐이었지. 그리하여 너는 사 년 동안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뜻이 아닌 형제의 주문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모든 시험을 피해 살아남고,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다면 결국 그건 불멸이 아닌가? 너는 너 자신이 불멸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불멸자인 양, 너의 소원들을 미루고 억누르지 않았느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보리스는 항변했다. “제가 무슨 소원을 억눌렀단 말입니까?” “하나하나 돌이켜 보아라. 왜 복수하지 못했는가? 형제의 유언 때문이 아닌가? 왜 삼촌을 징벌하여, 또는 용서하여 자신의 과거를 깨끗이 씻지 못하는가? 망설임이 네 욕망을 옥죄고 있다. 왜 사랑하는 소녀를 너의 것으로 하지 못했는가? 필멸자일수록 짧은 생애를 ..
김소월의 [ 山有花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하나로,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알고 있겠지만 간단하게 작가 소개를 해보려 한다.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소월(素月)이라는 호로 더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의 한과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시를 써 민족의 대표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흔히 그의 시를 보고 김소월을 현실에 대해 무감각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론 일제치하의 현실에 대한 비판 등 현실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교과서에 맨 ..
윤동주의 [ 序詩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아마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문제로 접한 시인이 윤동주가 아닐까. 그 정도로 한국 문학사에서 많이 다뤄지는 민족 시인으로, 이육사와 더불어 문학 시간 때 그 이름이 셀 수 없이 거론되었을 것이다. 나도 윤동주를 국어 시간 때 처음 접해봤고, 모의고사를 거듭할수록 그의 시가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윤동주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는 일제강점기의 시인으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와 애국심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
백석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대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한 흰 김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워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만세전(염상섭) 제목: 고질적 여성 차별 만세전은 주인공 이인화가 유학 도중 친정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인화는 급히 떠나야 할 상황임에도 우유부단하게 이곳저곳을 헤맨다. 다시 마음을 잡고 고향에 가던 도중, 배 안에서 조선인들을 멸시하는 말을 듣고 조국민의 고충을 알게 된다. 그가 국숫집에서 만난 아이는 아버지의 조국인 일본을 더 동경했고, 이인화의 형은 집 근처 일대가 일본인 명의가 되어가는 것을 반기며 이익이 더 오르길 기대한다. 그는 그런 조국민의 태도를 보고 진절머리를 느끼고 부인과 가족, 조국의 더럽혀진 현실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인화가 느낀 한국은 구더기가 들끓는 묘지로 묘사된다. 죽어버린 사람들의 관념들이 묻힌 곳. 그런 ..
광장(최인훈) 주제: 꿈을 좌절시킨 광장 최인훈의 광장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는 이념이 대립된 광장이다. 말로만 대립이지, 남한과 북한은 다르면서도 같았다. 공통점이 있다면 두 광장에선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거다. 둘 다 모순이 있었다. 남한의 광장은 텅 비어서 죽어버렸고, 북한의 광장은 혁명의 흥분만을 꾸미는 위선자다. 광장은 고독했고, 탈출구도 없었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에게 남쪽은 월북한 아버지의 죄를 그에게 씌어주었고, 북쪽은 겉치레 혁명으로 그를 좌절시켰다. 그는 남한의 윤애에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거절당하고, 북한의 은혜에겐 사랑을 배신당한다. 슬픔 속에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월북을 하고, 중립국으로 도피를 하고, 푸른 광장에 도달하게 된다. 이명준의 삶은 사랑을 준 은혜의..
돌베개 위의 나날 /해이수 작가 이 소설에서는 한국인의 미묘한 특성과 해외거주민들의 가혹한 타국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사내는 아내와 함께 동반비자를 얻어 호주에서의 유학을 꿈꾸며 이민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맞물리지 않는 생활고를 겪으며 그 꿈을 접게 되고, 결국 시민권을 따기 위한 수단으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흔히 3D 직종으로 불리는 청소업체를 선배에게 소개받아 간신히 일자리를 얻으나, 최씨라는 인물에게 두어 달치 임금을 뜯기는 등 온갖 비운을 겪게 되는 인물이다. 사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나타나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에 대해 주목을 해보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이와 상반되는 생각들을 주입받아왔다. 경쟁의 시대에서 누구보다 앞서야..